Engram 작업노트



어릴 적부터 집의 한쪽 벽면에 영문으로 된 브리테니커 백과사전 Encyclopaedia Britannica 과 학생용 백과사전, 사상서들이 쌓여 있었다. 아무도 읽을 사람이 없었지만 아버님이 지인의 부탁으로 사 왔다고 들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님 사업이 부도가 났다. 모든 집안 물건에 딱지가 붙여져 팔려 나갔고 우리 식구는 단칸방, 셋방으로 이사를 다녀야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 책 들은 살아남았다. 내가 사진을 전공 한 후로는 언젠간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지하 창고에, 베란다에 쌓아 가며 이사할 때 마다 끌고 다녔다. 2001년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책들을 정리를 했을 때도 그 책들은 버리질 못했다.


그리고 2015년 이사를 하다 베란다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이 책들을 다시 보게 됐다.


멋졌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와 책갈피 끝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는 느낌이 우선 좋았다.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은 현존하는 근대적 백과사전 중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책이다. 그리고 백과사전의 뜻을 찾아보면 학문, 예술, 문화, 사회, 경제 따위의 과학과 자연 및 인간 활동에 관련된 모든 지식을 압축하여 풀이 한 책이라고 되어있다. 세상 모든 것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나타내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 작업은 시작되었다.


백과사전에서 내용분류의 단위이자 설명의 대상이 되는 것을 표제어라고 한다. 이 작업은 표제어를 설명한 여러 장의 내용들을 한 장에 중첩시켜 촬영한다. 각 장,각각의 글씨, 그림들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서로 다른 밝기로 중첩시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짐과 의식하지 않은 것들의 흔적과 남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표제어의 설명이 복잡할수록, 즉 설명의 장 수가 많을수록 흐려져 가며 비워져 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기억흔적 Engram이란 심리학, 정신의학 용어가 있다. 학습에 의해 획득한 기억은 동물 뇌 안에 어떤 형태로든 축적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기억이다. 그리고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는 저자의 죽음 Death of author이라 했다. 어떤 텍스트도 영구불변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텍스트를 읽는 각각의 독자는 언어가 스스로에게 부가한 인상에 기초해 자신만의 해석을 형성 한다고 했다.


모든 언어는 관념 이라 했다. 그리고 언어로 표현 된 모든 것도 관념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기억엔 각각의 형태로 남게 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워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