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ram(기억흔적)

 




박현수(전시기획자)

시간의옆면


잠겨있는시간이다. 사물과말들이  깊은시간속에잠겨있다.
기억은분해되고흔적은공간으로남았다.


박찬우는 2015년 “Stone”의작가노트에서돌이간직한시간의깊이를언급했었다. 시간은깊이를가지는것일까? 이번작업에서그가선택한대상은공간, 책장, 선반, 백과사전이다. 선명한틀안에투명하게겹쳐진사물과글자와이미지는흐릿한형태로화면을채운다. 펼쳐진백과사전의글과이미지는중첩되고, 비우고채운공간의사물이있음과없음사이로기록되었다. 선택된장은발생한시간의순서와상관없이작가의현시점에서하나의공간안에재배치된다. 겹쳐진이미지사이로시간의위치가재구성되었다. 책과책장, 사물의선반, 세상의모든것이언어로자리한백과사전. 이모든것을바라보는작가의지금. 그리고여기, 채움과비움. 마주한의미와사라진기억, 그관계들이다.


그가한화면안에묶어놓은중첩된이미지들은기록의의미로적합하지않다. 남기기위한능동적인행위로써 ‘기록’ 보다남겨진 ‘흔적’에가깝다. 비움에서채움까지, 선택과중첩의간격마다행위의주체로서그가의도한것은남기기보다남겨짐이다. 작가는사건과사건사이기억된시간들을해체하려고한것일까? 해체의끝에남겨질수있는  것들을확인하고싶었던것은아닐까? 기억될수없는시간으로사라질것들을영원한시간의공간으로, 어디나존재하는시간으로보존하려는작가의무모한시도는아닐까? 이번전시에서백과사전과책장은작가개인의오랜기억의표상으로시간의관계를이어주는단초가된다. 관심은이어타인의시간이축적된책장, 선반, 공간으로이동하였다. 이곳에는타인의시간과그것을바라보는작가의시간이중첩되어있다.


백과사전과책장에보존된작가의기억은그가 39살되던해마주한죽음에대한의식의과거, 현재, 미래이다. 그시간작가는흔적을정리했고책장을비웠다. 그당시책이란자신의생각과마음, 미련이라고작가는말한다.


” Bookshelf란작업은내책장에서시작되었다. 아프기전에있었던책장과수술과함께비웠던책장, 그리고다시새책으로차있는책장을중첩시켜한장의사진으로만들었다. 책은그사람의생각이고가치관이라한다. 즉이작업은그전의나와모든걸비웠던나, 그리고현재의나를한장의사진으로표현하고자하는작업이다.” (작가노트 Bookshelf 중에서) 여기서문득지난작업 “Stone”이생각난다. 물에잠긴둥근돌과그사이를가로지르는물의표면. 물은돌을둘러싼투명한빛의그림자로드러난다. 시간은돌과물사이잠겨있는침묵으로기록되었다.


하강하는기억은서서히빛을바라며몸체없는유령처럼공기속에내려앉는다. 물밑으로가라앉는부유물이바닥에층을쌓듯이기억의흔적들이내려앉을수있는또다른장소를다층적인기억과떠도는의미들, 붙잡으려는말들, 기억들또말들, 말이되지못한말들, 이들이담길공간이필요하다. 시간과시간이새로운의미로떠오르는빈공간, 기억은가라앉고그안에녹아있던시간이호출되는공간이다. 붙들린흔적이기억의저항으로일정한균열을만들때어떠한읽기도허락되지않은모호함으로가득한예민하고은밀한공간이생성된다. 이렇게분리되는기억을위한공간들은정지된시간이된다. 그시간의옆으로사라지는것들이흐릿하게투사된다.

유예된기억, 분리된흔적


이렇게 “기억흔적”은작가의프레임속시간을해체하며흩어낸결과다. 기억으로가라앉은시간이더이상말하지않는표면으로떠오를때, 이것은텅빈미래를여는도구가된다. 메를로퐁티는시간성에관한그의글을통해 “내다봄은사실상돌이켜봄이며, 미래는과거의투사가된다. 마찬가지로모든돌이켜봄은역전된내다봄이다.”라고말한다. 결국시간이란사고되는것이며시간을전개하고구성하는것은의식이라는것이다.

작가는자신이위치한시간을넘어열린시간들과관계맺기를시도하고, 이러한관계를통해다시금이미와있는미래로자신의위치를밀어넣는다. 즉이러한일련의과정이하나의화면에응집되고있는것이다. 남겨진흔적을하나의시간에압축하려는시도가다다른지점을백과사전의작업방식을설명한그의글에서찾을수있는데, 표제어에따른설명이많을수록중첩된하나의이미지는흐려지고비워져간다는것이다. 빛의기록은쌓일수록흐려진다. 희뿌연공기처럼존재를지탱할수없을것같은미약한무게가흔적으로남는다. 실체없는투명한상은존재했던시간을증명한다. 중첩된각각의사물들은화면뒤편으로서서히움직이며바라보는정면에서점차멀어지는것과같은착시를일으킨다. 정지된평면위에시간이포착되었다.


자신을넘어선곳에서잃어버린시간과다시합쳐지는순간을기록하고, 이러한사건들을연결하고해체하며변화하는부분들을끼우고맞추기를반복한다. 이과정을통해서스스로팽창하는순환의공간을작가는시간의깊이라고언급했던것이아닐까? 다시퐁티의글을통해작가가지속했던남겨지는것에대해나름의추측을이어가볼수있지않을까?


“시간은그것이완전하게전개되지않는한에서만, 과거, 현재, 미래가동일한의미에있지않는한에서만존재할수있다. 생기게하면서도존재하지않음, 완전하게구성되지않음은시간에본질적이다. 구성된시간, 전과후에따른일련의가능적관계들은시간자체가아니고시간의최종적기록이며, 객관적사고가언제나전제하면서도파악하는데는실패하는시간의이행의결과이다. 그것은공간의것이다.”


결국그의작업은내게채움과비움사이멈춤의공백에관한기록으로남았다. 전시제목 “기억흔적”을따라우리가마주하는사전과책장과공간은공백의리듬을보여주기위한표식이자증거이다.


의미로기억되는시간의장이늘어선모습을바라볼수있다면그사이공백을지탱하는침묵의의미를기억할수있을것이다. 그의돌은아니물은, 그리고사전과책장과공간은아니기억은공백의시간과침묵의언어를위한자리를서서히드러내는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