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우 작가론
완전하고 투명한 프레임
김노암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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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실존을 감각하지 않는 작가가 있을까? 모든 것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던 져진 존재자이다.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개별자일 뿐이다. 실존 자체는 배를 타면 느끼는 어지러움과 같다. 단단한 지반이 아닌 유동하는 상태에서 삶을 일구는 것이다. 걱정거리로 가득한 염려 의 세계에서 너무 많은 관념과 이미지들로 혼탁해져 있어서 선명한 사유, 명징한 표현이 어렵다. 이질적인 것들로 혼합된 일상의 시간 을 분해해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투명한 시간은 언제 가능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일수록 우리는 망각 하고 지낸다. 가끔 그런 질문을 만나면 한심해하거나 웃어버린다. 가장 중요한 질문일수록 예술가들의 관심을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과도한 감각, 이미 지들이 범람 속에서 우리는 보다 예민하게 근원적인, 원형적인 원소로서의 이미지를 모색한다. 여기서 프레임은 신비한 기술로 등장한 다. 세계와 만나고 이해하는 명상의 기술이다. 이미지와 프레임이 키워드이다.
박찬우 작가의 감각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과 이미지에서 느끼는 것들을 추출해 사진에 담는다. 작가는 연금술사들처럼 사물과 이미지를 섞어 의식과 무의식의 해방으로 나아간다. 작가에게는 어린 시절 주변을 둘러싼 책(백과사전 들)과 인쇄된 텍스트의 문자 이미지들, 상징과 기호들이 마치 문신처럼 무의식에 날카롭게 각인되었던 것 같다. 이는 작가의 사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마치 십계명에 기록된 문자들처럼 어떤 명령과 도덕율을 상기시켰다. 세상을 이루는 모든 사물과 이름들이 새겨진 백과사전적 세계가 거대한 이미지로 반복되어 나타났다. 빈 하얀 공간에 물에 잠긴 타원형의 둥근 물과 흐릿하게 흔들리는 책과 텍스트 이미지는 완전히 다른 대상을 다뤘지만 최초의 책은 돌에 새긴 문자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돌과 책은 인류에게는 동일한 사물로 이해된다.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자연의 기록을 표면에 새 둥근 돌 반영된 물의 이미지와 책에 새겨진 문자들이 세계가 춤을 추듯 아른거리는 사진은 작가 의 눈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추측하게 한다.
숲속에 우연히 발견된 희색의 물체는 어떤 조우(遭遇)이고 어떤 계기인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신비한 사물과 조응한다. 인류가 탄생하기 전 초고대 지구에 홀연히 나타난 검은 물체. 인류의 탄생, 이성적 존재로 진화하도록 촉진하는 매개물로 상상되는 검은 구조물이 사진 속 평범한 숲속 희색의 구조물과 중첩된다.
1) 프레임(FRAME)은 인간의 의식이 진화하면서 외계의 대상과 현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구조 또는 사고체계를 의미한다. 한번 설정되 어 각인된 프레임은 거의 바꾸기 어려워서 처음에는 분명한 인식과 이해의 도구로 기능하지만 나중에는 시대와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도록 장애가 되는 선입견을 만든다. 넓게는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도구로서 프레임은 추상적 사유능력을 발달과 함께 고도로 정교 한 신념체계로 확장한다. 좁게는 카메라 뷰파인더나 영상의 외곽 경계선을 의미한다. 화면에 피사체가 들어오면 프레임 인이고 밖으로 빠져나가면 프레임 아웃이라고 말한다. 박찬우 작가의 사진이미지에서는 프레임 인과 프레임 아웃이 공존한다.
그 사이에는 거대한 떨림과 긴장을 떠올릴 수 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이 떨어져 있는 먼 우주에서 영겁의 시간을 건너와 우리 앞 에 던져진 하얀색 물체가 만일 무의식 속에서 돌출한 메타포이다. 그것은 신비한 현자의 돌이다. 우리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우리를 주조한다.2) 이미지에는 온전히 존재 전체를 담글 수 없는 결핍이 있다. 우리는 시간 속에 거주하기에 시간 밖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작가들은 예외적으로 시간 밖으로 나가려는 의지를 이미지에 담는다. 이미지는 유동하고 있기에 논리와 규칙으로 완전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합리적 이성의 눈에 이미지는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조형과 채색으로 구성되어있어도 어딘가 흐릿하게 안개가 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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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우 작가는 오랫동안 기억과 흔적의 의식의 배경으로 밀려난 텍스트 이미지, 중력이 사라진 미지의 완전한 공간, 공기 속 수분이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의 명징한 순간들을 담으려했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 '프레임 FRAME'은 지난 작업과의 연속성과 단절을 보여준다. 자르고 붙이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동일 하지만 프레임의 안과 밖에 모두 포섭되는 이미지는 이상적인 '완전한' 프레임을 지향한다. 어떤 상황변화에서도 변치 않고 미지의 사 물을 인지의 대상에 넣는 과정은 프레임이 연금술사의 비밀스런 도구처럼 사용된다. 세상과 인간을 연결하는 프레임은 힘이고 어떤 의 지이다.
다른 한편으로 프레임은 상대적이며 부드럽다. 생각이 깊고 감각이 섬세하고 감정이 풍부할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프레임은 유 연하다. 둥글 수도 네모날 수도 삼각형일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형태의 프레임도 가능할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어떤 기준이나 틀을 미리 세워놓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살다보면 저절로 생기는 프레임이 있다. 프레임에 갇히기도 하지만 그것을 발판으로 세상으로 더 넓고 깊게 나아갈 수 있다. 작가에게는 심미적 또는 미학적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아이디어를 확장해보면 완전한 실재(존재)를 이미지로 재현한다는 것은 완전한 프레임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완전한 프레임은 마치 보르헤스의 '알렙'처럼 일상의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미적 형이상학이 세계에서 가능한 것이다. 미적 이념의 지평에서 가능 한 이 완벽한 프레임의 비전은 순간 명멸하는 번개와 같다. 갑자기 강신한 완전한 존재에게만 허락된 완전한 프레임인 것이다. 불완전 한 일상의 인간에게는 언제나 도달 가능한 세계이지만 결코 도달할 수는 없는 경계이다. 따라서 박찬우 작가의 사진 이미지는 일상의 현실 사이사이 엿보이는 이상적 프레임과 세계 가 완전히 일치하는 찰나의 '표현'이다. 그의 사진은 결코 '기록'이 될 수 없다. 사진 이미지는 이미 관념과 물질이 융합된 실재의 어떤 모습을 담는다. 기록이자 동시에 해석이고 표현이다. 따라서 정보나 지식으로 한정되는 기록을 벗어나 있다. 더구나 한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과 비전이 담긴 사진 이미지는 개별자의 시각을 벗어날 수 없다. 인간 이 개별자이자 동시에 보편자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지는 이러한 인간의 조건을 넘어 초월하려는 어떤 힘을 느끼게 한다. 사진에 찍힌 대상이 사진을 보고 있는 현재의 시간에는 부재한다는 존재론적 역설을 은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세상에 던져있지만, 거꾸로 우리는 세상을 던져버릴 수도 있다. 프레임이란 인간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난 자연의 세계란 프레임 없음의 세계이다. 프레임이란 프레임 없음과 한 쌍을 이룬다. 인류사를 통해 가장 근본적인 문화의 프레임은 언어일 것이다. 상징과 언어의 구조와 프레임으로 인류는 세상을 재단하고 구성하였다. 최초의 프레임을 통해 인류가 세상을 발견 또는 발명함으로써 문명과 문화가 개시되었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바로 그 가장 근원적이며 권위 있는 프레임을 벗어나려고 한다. 언어의 세계에서 벗어난 세계 를 상상하고 발명하고 접촉하려 한다. 예술가의 눈에 기존 세상은 온전한 실재가 아니라 해석되고 편집되어 마침내 발명된 실재이다. 따라서 허상의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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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오랫동안 실재의 그림자, 또는 가짜 실재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니체가 신과 이데아를 해체한 수 우리의 모든 인식, 의식 은 해석이고 은유와 상상이 결합된 의식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미지는 복권되고 진실이 생성되는 태반으로 존재론적으로 실재와 같은 지위로 격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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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물, 나무와 숲, 반영된 이미지. 사물과 개념의 운동이 뒤엉킨 세계에서 명료한 질서와 균형을 찾는 것은 어렵다. 작가는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기하학적 프레임을 상상한다. 선명한 공기, 명칭한 공간과 단순하지만 날카로운 프레임이 기묘한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 현실과 다른 또 다른 현실의 밝은 그림자이다. 무한한 실재(REALITY)의 경험이 프레임에 걸쳐져 있다. 사진은 기록이지만 동시에 해 석이고 표현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주체가 누구인지, 또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에 따라서 예술사진인지 아니면 상업사진인지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구분이 그리 중요해지지 않게 된 것 같다. 사진이 예술이라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상식이 되었다. 또한 디지털시대에 들어서 사진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사실도 모두 알고 있다. 사진이 등장했을 때 회화의 죽음을 예감한 미술 가들이 패닉에 빠졌던 것처럼 말이다. 사진은 인간과 세계를 담는다. 인간의 눈으로 본 세계를 다룬다. 사진은 이미지를 다루고 욕망을다룬다.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고 타인 의 취향이다. 사진의 셔터는 작가가 누르는 것이 아니다. 타자의 욕망이 불러일으킨 어떤 힘이 누르는 것이다. 작가는 욕망이 지나가는 통로일 뿐이다. 그러나 이 통로는 단순한 물질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욕망 자체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시대와 지역, 작가의 성향에 따라서 형태와 분위기야 다르겠지만 현대예술로서 사진은 목표를 정확히 잡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평생을 그 목표를 잡기 위해 모두 써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의 욕망과는 그 운동이 다르거나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예술 활동 을 통해 우리가 정신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성장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 분명한 증거란 일종의 통념이거나 선입견에 기대는 것들이다. 특별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빛이 깊이 각인될 때가 있다. 누군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존재를 본다. 그는 세계의 비밀스런 커튼 뒤에 그늘진 그러나 깊은 의미의 층을 본다. 그에게 세계란 하나가 아닌 모든 세계로 다가온다. 천 개의 세계들이 하나의 세계로 은유된다. 무수한 겹과 층을 건너간다. 동시에 작가의 내면에 작동하는 상징과 은유의 문법을 새롭게 구성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상의 시간은 무화된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시간이 되는 세계가 있다. 그런 시간대는 언어와 문법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이미지들, 끊임없이 진동하는 이미지의 운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 다. 박찬우 작가의 사진은 둘러싼 외부 세계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새롭게 재구성해서 드러내는 작업이지만 처음 제시된 프레임은 이내 사 라지고 다른 프레임으로 교체된다. 그리고 이러한 프레임의 교체는 영원히 반복된다. 프레임을 사유한다는 것은 프레임을 만들고 지우 는 운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본다면 프레임이란 본래 가상이며 일련이 가상들이 작동하며 세계와 나를 연결하고 의미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사회현실의 관계로부터 벗어나 자기자신에로 완전히 되돌아오기를 촉구한다. 추상성이 표현된 절제된 구도가 명상을 이끌어낸 다. 마치 세속의 생활을 마치고 다른 차원의 시간에 존재하는 느낌이다. 3) 그의 사진에는 오욕질정에서 벗어나려는 냉정함과 엄격함이 있다. 만물이 유동하는 세계 속에서 작가의 사진은 명상에 기반한 사진의 깊은 감각을 잘 보여준다.
3)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흐른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관념이고 이미지이다. 이러한 강한 믿음의 체계는 20세기에 들어 해체되기 시작했고 많은 예술가들은 시간이란 환타지라는 생각에 더 매료되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한 운동을 하며 무엇보다 인간은 시간을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 없다. 시간은 하나의 형식이고 추상이다.
작업 1. 틀
FRAME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물리적 공간을 만들어 본다. 한 칸
한 평짜리
나 만의 절대공간을 만들어 본다.
작업 2. 완벽
르네상스 시대 교황 베네틱트 8세는 성 베드로성당 그림을 그리려고 사신을 시켜 여러 화가들의 포트폴리오를 받았는데 GIOTTO는 동그라미 하나만 그려 주었다고 한다. 이에 사신은 다른 그림도 달라고 했지만 지오토는 이것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사신을 돌려보냈고 교황은 그 동그라미만 보고 지오토에 게 성당 그림을 맡겼다. 여기서 GIOTTO의 PERFECT CIRCLE란 말이 나오게 되었으며 램브란트 등 후대 많은 화가들이 PERFECT CIRCLE을 시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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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작가는 미술대학에서 배운 틀을 없애는 작업을 한다.
항상 모든 작업에 틀 안과 틀 바깥을 고민한다
작업 3. CROP
FRAME은 사진가가 세상을 보는 인식의 창이다. 사진은 촬영할 때부터 대상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잘라서 담을 것인가 하는 작업이다. 과거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파인더 안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만 잘라서 담는 작업이었다면 지금 디지털카메라 시절에는 좀 더 넓게 촬
영해서 PHOTOSHOP 등 후반작업으로 다시 재 CROP 작업을 거친다. 전달자의 FRAME을 사진가의 FRAME틀로, 그리고 또 하나의 COLOR의 FRAME을 만든다.